Writing/Chinese poem

送人 (송인) /鄭知常(정지상)

혜공 2015. 2. 10. 11:00

 

雨歇長堤草色多 (우헐장제초색다)

送君南浦動悲歌 (송군남포동비가)

大同江水何時盡 (대동강수하시진)

別淚年年添綠波 (별루년년첨록파)

 

비 그치고 긴 둑의 풀빛은 싱그러운데

임을 보낸 남포(남쪽 포구)에는 슬픈 노래만 울리는구나

대동강 물은 언제 되어야 마를텐가

이별의 눈물은 해마다 푸른 물결을 더하는데

 

 


정지상(鄭知常, ? ~1135년)은 고려 중기 인종 때의 문신(文臣)이자 시인이다. 본관은 서경(西京)이고, 초명은 지원(之元), 호는 남호(南湖)로서, 서경 출신이다. 서경파 세력의 지도자였으며 김부식의 정적이었다. 과거에 급제한 뒤 정언, 사간 등을 거쳐 기거주에 이르렀다. 묘청, 윤언이 등과 함께 서경 천도와 칭제건원을 주장하였으며, 후일 묘청의 서경천도운동과 대위국 수립의 관련자라는 누명을 쓰고 처형당한다.

서경(지금의 평양) 출신이다. 초명은 지원(之元)인데 뒤에 지상(知常)으로 개명하였으며,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노씨(盧氏) 슬하에서 성장했다. 어려서부터 기억력이 좋고 글씨를 잘 썼다. 또한 일찍부터 시를 지어 5세 무렵부터 시를 지었다 한다. 시재에 관해서는 이미 5세 때에 강 위에 뜬 해오라기를 보고 지은 시인 “어느 누가 흰 붓을 가지고 乙자를 강물에 썼는고(何人將白筆 乙字寫江波).”라는 시를 지었다.

서경에 두었던 분사국자감시(分司國子監試) 진사시에 입격하여 진사가 된 후 1112년(예종 7) 오연총이 지공거가 되어 주관한 진사시에 장원으로 급제한다.

1114년(예종 9년) 문과(文科)에 급제하였다. 그뒤 여러 벼슬을 거쳐 1127년(인종 5) 좌정언으로 있을 때 척준경(拓俊京)이 이자겸(李資謙)과 그 일파를 제거한 공을 믿고 권력을 농단하고 발호한다 하여 척준경을 탄핵, 공격하여 유배당하게 했다.

1129년 좌사간(左司諫)으로서 윤언이 등과 함께 시정(時政)의 득설을 논하는 소를 올렸다. 묘청(妙淸), 백수한(白壽翰) 등의 음양비술(陰陽秘術)을 믿어 한때 묘청, 백수한 등과 함께 삼성(三聖)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그리고 서울을 서경에 옮길 것과 금나라를 정벌하고 고려 왕도 황제로 칭할 것을 주장했다. 1130년 시인 곽여가 죽자 왕명으로 <산재기>를 지었고, 1135년(인종 13년) 묘청의 난이 일어나자 이에 관련된 혐의로 백수한과 함께 김부식 일파에게 몰리어 피살당하였다.

그는 고려 한문학상에 있어 문호(文豪)이며 사상가로 특히 시에 뛰어나 고려 12시인 중의 한 사람으로 꼽힌다. 역학(易學)과 불전(佛典)에 정통하고, 그림·글씨에 능했으며 노장철학(老莊哲學)에도 조예가 깊다.

1112년(예종 7년) 과거에 급제해서, 벼슬은 정언(正言)·사간(司諫)을 지내고, 인종 때 기거주(起居注)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