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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唐詩) /이원섭

혜공 2015. 2. 12. 15:26

 

 

 

 

 

 

 

인간이 언어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한 이래, 시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예술의 알파와 오메가였다. ‘시의 나라’라 불러도 틀리지 않는 중국은 지금으로부터 2500년 내지 3000년 전의 시가 수록된 ‘시경(詩經)’에서부터 시작된 시 문화는 청대에 이르기까지 유구한 역사와 더불어 위대한 시의 바다를 이룬다. 그 가운데서 당나라 때 창작된 시편들은 수 천 년의 시사(詩史에서 가장 높은 예술적 성취를 이룬다. 이백, 두보, 왕유, 맹호, 한유, 백거이, 이하, 이상은 이루 다 열거 할 수 없는 시인의 이름만으로도 당시(唐詩)의 위대함을 짐작하게 한다.


당시의 흐름은 크게 초당(初唐), 성당(盛唐), 중당(中唐), 만당(晩唐)으로 가를 수 있다. 초당은 현종(玄宗)의 즉위 전까지 약 백년의 시기로 당시의 절정을 준비하는 기간으로 절구(絶句)와 율시(律詩)같은 형식의 완성 시기이다. 성당은 현종 재위 50여년의 시기로 정치 사회적 난숙기로 이백과 두보로 대표되는 불세출의 천재시인의 등장으로 중국시문학의 금자탑을 이룬 시기이다. 또한 왕유, 맹호연 등 일류 시인의 작품 또한 양적인 면에서나 질적인 면에서 손색이 없는 시기였다. 그러나 안록산의 난과 함께 시작된 칠십여 년의 중당 시기는 만개한 꽃이 지기 전의 허전함 같은 것이 시의 면면에 나타난 시기이다. 전기, 한유, 백거이, 이하 등이 활약했다. 마지막으로 당 멸망에 이르는 칠십 년의 만당 시기는 사회적 불안이 반영되어 위대한 구상보다는 지엽적이며 개인적 취향에 매몰되는 경향을 보여주며 위대한 당 삼백년의 역사는 시의 역사로 그대로 투영되고 있다.


당대 최고의 시인이자 중국 시사에 가장 높은 봉우리였던 이백과 가장 깊고 넓은 강물처럼 흘렀던 두보는 당시로 국한될 수 없는 시인이다. 두 시인의 영향력은 당대(唐代)에 머물지 않고 이후 지금까지 지역적으로는 한자문화권에 속한 우리나라와 일본을 비롯해 멀리 서양에까지 미친다. 세상에 대한 꿈과 좌절 그리고 한사람의 의지에 의해 일희일비(一喜一悲)하지 않는 인간의 삶을 시인의 눈으로 체험했다. 이백은 호방한 기운으로 한잔 술을 들이키듯 세상을 마셨고 그 흥취를 토해냈다. 술, 달, 여인, 그리고 광활한 대륙의 기상을 신선처럼 자유롭게 넘나들었다. 이에 반해 두보는 삶의 쾌락 이면에 감춘 슬픔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오래도록 삭힌 장처럼 조탁(彫琢)된 언어로 감정의 깊은 우물을 파들어 간 시인이다. 이백이 시선(詩仙)으로 일컬어지면 두보는 시성(詩聖)으로 추앙받고 있다. 두보의 시를 우국충정의 맥락에서 바라보는 점이 없지 않은데 이는 유교적 이념으로 지나치게 재단된 점이라 말할 수 있다.


왕유와 맹호연은 자연을 주제로 한 깊은 시를 써내려갔고 한유와 백거이는 성당의 절정을 다시 꽃피우려고 자기만의 개성을 발휘했던 시인이다. 특히 이하는 프랑스의 시인 보들레르의 『악(惡)의 꽃』을 이미 피운 시인이다. 암울한 운명의 악은 귀신이 되어 자기 안에 도사린다. 누구에게도 볼 수 없는 파격적 시어의 창조와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무너뜨리며 스스로 귀신이 된 병적인 시인이었다. 스물여섯의 나이에 요절한 이단적 시인이었다. 어디 그뿐인가 이상은, 고적, 전기, 잠참, 왕창령, 두목 등 주옥같은 시편의 주인공들이 당시의 세계를 마치 춘추전국시대 제자백가(諸子百家)처럼 저마다의 미적 성취로 그 어느 세계문학과도 비교할 수 없는 보고(寶庫)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러한 당시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그리 가깝지 않다. 그것은 이들 작품이 한문으로 이루어져 시의 독음(讀音)이 어려운 것은 물론 성조(聲調)와 압운(押韻)을 지닌 한자에 대한 이해가 전문가에게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말로 번역된 것이라 해도 한자어가 많고 시의 배경을 이루는 역사와 문화에 대한 짧은 지식이 첩첩산중처럼 가로막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는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동아시아 전체의 문학적 토양이 되었기에 우리의 고전문학을 이해하는데 있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중국역사에 있어서도 무진장(無盡藏)한 당시의 섭렵이 쉽지 않아 후대에 다양한 선집이 등장했고 이는 우리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최근 한글 번역본의 경우 한문 원문에 일일이 독음을 단 것과 번역 이외에 일종의 해설을 곁들인 평석(評釋)을 더해 일반인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 새로운 세계의 경험은 그저 이루어지는 일은 아니다. 그러나 다가가는 만큼 어려움은 친숙함으로 변해 있는 것이다.


『당시唐詩』는 필자에겐 고등학교 시절 가장 애독했던 책이다. 클래식 음악을 듣는다고 듣는 것도 내 인생의 절반이 넘는다.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만 알던 시절이 지나 말러라는 이름의 작곡가를 만난 것도 제법 되었다. 말러의 교향곡을 듣다 그에게 <대지(大地)의 노래Das Lied von der Erde>라는 제목의 독특한 교향곡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중국의 한시(漢詩)를 독일어로 한트 베트케가 편역한 <중국의 피리>라는 작품을 읽고 만든 가장 말러적인 작품으로 총 6곡으로 이루어진 이 곡은 테너와 콘트랄토가 번갈아 가며노래를 부른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지평(地平)은 말러의 상상을 자극했고 죽음의 미래가 다가오는 현실 속에서 시집 속에 흐르는 동양적인 체관(諦觀)과 현세에 대한 애착의 교차는 말러에게 또 다른 공감을 낳았다. 그가 48세 때인 1909년 여름에 작곡되어 1911년, 말러가 죽은 지 반년 후, 그해 제자 브루노 발터에 지휘로 초연되었다. 당시가 천년이 넘도록 애독되듯이 <대지의 노래>는 세기를 넘어 음악적 울림을 전하고 있다.


6곡의 노래는 이백의 <대지의 슬픔을 노래하는 술노래>로 시작되어 <가을에 쓸쓸한 자>, <청춘에 대하여>,<아름다움에 대하여>, <봄에 취하는 자>, 마지막으로 <고별>로 끝을 맺는다. 2곡은 전기의 시를 바탕으로 했고 마지막 곡은 맹호연과 왕유의 시에서 그리고 나머지는 모두 이백의 시에서 가사를 가져왔다. 1,3,5악장은 테너, 2,4,6악장은 콘트랄토 독창으로 연주된다. 본래의 시와 가사가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며 가사는 당시가 동기를 이루지만 가사에서는 말러 나름의 해석이 가미되고 있다.


취한 듯 금관악기의 내지름은 취한 자의 외침처럼 시작되는 1악장은 겨울같이 황량한 대지의 비극을 노래한다. ‘인간이 얼마나 오래 살 수 있겠는가’ 라는 가사에서 유한한 지상의 운명적 존재인 인간을 바라보고 있다. 불 타 없어진 자신은 휴식을 찾는 가을의 고독한 자가 되어버리는 2악장, 그러나 푸른 청춘과 소년과 아가씨의 아름다움이 있는 여름처럼 무성한 3,4악장이 이어지며 대지의 노래를 부르는 주인공은 시간을 거슬러 간다. 그리고는 5악장에서 봄에 취하고 만다. 마지막 6악장<고별>은 30여분에 가까운 곡으로 앞의 다섯 악장을 모두 포괄하면서 계절적으로 여름과 가을을 노래하고 마침내 영원한 봄을 향해, 노래의 주인공이 차안(此岸)의 세계에서 피안(彼岸)의 세계로 승화되며 끝을 맺는다.


<대지의 노래>는 20세기의 위대한 거장들에 의해 숱한 명연주를 남기고 있다. 첫손에 꼽히는 발터의 연주는 역사적 연주로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말러의 애제자이자 초연자로서 그는 여러 차례의 녹음을 남겼다. 그 가운데 콘트랄토 캐슬린 페리어가 터네 율리어스 파차크, 빈 필과 호흡을 맞춘 1952년 연주가 모노 녹음임에도 불구하고 비탄의 심정을 부르는 통절한 절창이 듣는 이를 숙연하게 한다. 메조소프라노 크리스타 루드비히가 테너 프리츠 분덜리히와 장중한 지휘로 유명한 클렘페러와의 1964년 녹음은 스테레오 시대를 대표하는 연주이다. 개인적으로는 발터가 메조소프라노 밀드레드 밀러와 테너 에른스트 헤플리거와 1960년에 뉴욕 필과 녹음한 연주가 음악적 완성도에서는 더 뛰어나다는 생각이다.


대부분의 연주가 메조소프라노나 콘트랄토에 의한 녹음인데 반해 루바토의 대가 번스타인은 바리톤 디트리히 피셔-디스카우을 기용해 테너 제임스 킹과 빈 필의 연주로 1966년 녹음한 음반은 색다른 감흥을 뜨겁게 전해주는 연주이다. 1악장에서부터 시작되는 제임스 킹의 열창과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도취적이다. 가을을 노래하는 피셔-디스카우의 섬세함은 오히려 여성의 목소리보다 시정(詩情)에 더 어울린다. 마지막 <고별>에서 피셔-디스카우의 진가는 어둡고 쓸쓸한 악상을 누구보다 절실하게 담고 있지만 결코 죽음에 침윤(浸潤)되지 않는 건강함이 있다. 번스타인의 음반을 다소 이질적이라 말하는 이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대지의 노래>에 대한 새로운 경험 그러나 실험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본질에 접근한 명연주로 생각된다. 끝으로 바그너 전문가수인 메조소프라노 발트라우트 마이어가 셈연 비쉬코프의 지휘로 서독일방송 교향악단과 협연한 공연 실황 또한 기회가 되면 꼭 한번 보기를 권하는 영상물이다. 마이어의 흔들림 없는 목소리와 비쉬코프의 진지한 지휘, 오케스트라의 변화를 눈으로 보며 쉽지 않은 <대지의 노래>에 빠져들 수 있는 영상물이며 음악적으로도 손색없는 연주이다.


긴 여름해가 지는 서녘의 불타는 노을을 보며 천 년도 더 이전의 사람들의 노래가 적힌 『당시唐詩』를 따라 소리 내어 읽어 본다. 과거와 미래를 꿰뚫고 흐르는 인간의 노래가 들린다. 가만히 귀 기울이면 노래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 다르지 않음을 깨달을 수 있다. 말러가 <중국의 피리>를 친구로부터 선물 받고 읽으면서 말러는 수 천 수 만 킬로미터의 세계 밖을 여행한 것이다. 그리고 그 체험은 자신의 삶의 여정과 다르지 않음을 알았던 말러는 <대지의 노래>를 부른 것이다. 그의 마지막 노래 <고별>의 마지막 가사를 인용하며 『당시唐詩』와 말러의 <대지의 노래>를 맺는다.


내 마음은 잔잔하게 그 때를 기다린다.

봄이 오면 사랑하는 대지의 모든 곳은 피어나고 새롭게 초록이 되리라.

모든 곳에서 푸흔 지평선은 눈부시게 영원히 빛나리라.

영원히... 영원히.....


글/ 자유기고가 이상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