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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이력서 /장 루이 푸르니에(Jean-Louis Fournier)

혜공 2015. 2. 17. 11:29

 

 

 

 

 

책소개

 

“천지창조의 위대한 과업을 마치시고 우수에 빠진 하느님, 이제 새로운 일거리를 찾아 지상으로 내려가시다.” 이 책은 이처럼 지상으로 내려간 하느님이 대기업 인사부장과 입사면접을 치르는 일주일간의 이야기를 재미나게 그린 ‘위트소설’이다. 취업을 위해 하느님도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작성하고 입사면접에 임한다는 신(神)의 의인화를 통해 인간사회의 다양한 모습을 재치 넘치는 위트와 풍자로 그려내고 있다.

 

 

저자소개 : 장 루이 푸르니에(Jean-Louis Fournier)

 

 

 

프랑스의 대표적인 베스트셀러 작가이며, 방송작가 겸 감독으로도 큰 명성을 얻고 있다. 푸르니에 특유의 짧고 간결한 문장 속에 담긴 위트와 냉소, 그리고 풍자 가득한 작품들은 인간사회의 어두운 면을 여지없이 비판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1938년 프랑스 북부 아라스에서 태어났다. 방송 연출가이자 시나리오 작가. 장-루이 푸르니에는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를 하는 듯한 문체로 정치, 교통법규, 담배, 노년, 정신과 상담 등에 관한 다양한 소재를 가지고 이미 수차례 성공작들을 펴냈다. 그의 모든 작품들은 블랙 유머와 따뜻한 감동을 담고 있다. 유머란 작가가 가장 좋아하는 무기 중 하나.

『아빠 어디 가?』에서처럼 심각한 주제를 다룰 때도 마찬가지다. 장-루이 푸르니에는 작품 속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아이들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장애를 가진 두 아들의 이야기. 수많은 독자들을 사로잡은 특별한 스타일의 작품으로, 이는 아마도 그의 책들 중 가장 절망적으로 익살맞은 책일 것이다. 다른 방식으로, 후회하는 태도나 거만함 없이 장애의 문제를 말해야 했기 때문이다. 장-루이 푸르니에는 이 새로운 소설 속에서 웃음과 절망 사이의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베스트셀러 작가이며, 방송작가 겸 감독으로도 큰 명성을 얻고 있다. 푸르니에 특유의 짧고 간결한 문장 속에 담긴 위트와 냉소, 그리고 풍자 가득한 작품들은 인간사회의 어두운 면을 여지없이 비판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또한 그의 작품 『하느님의 이력서Curriculum Vitae de Dieu』 역시 언제나처럼 의인화된 하느님의 눈을 통해 인간사회의 물질만능주의와 이기주의를 날카롭지만 유머러스하게 꼬집어내고 있다.

 

 

출판사 리뷰

 

하느님의 엄청난 이력서, 그 안에는 무엇이 쓰여 있을까?

 

하느님의 ‘엄청난’ 이력서를 가운데 두고 마주앉은 하느님과 대기업 인사부장. 둘 간의 미묘한 신경전과 긴장감이 흐르는 가운데 면접은 차분히 진행된다. 다소 거만하고 냉소적인 하느님이 자신의 경력사항을 담담히 밝히자, 인사부장은 반신반의하면서도 짐짓 흥미로운 눈빛으로 그의 천지창조 경력에 대해 하나씩 질문을 던진다.

“현주소는?”

“도처에.”

“좀더 정확하게 말씀해주십시오.”

“한 발은 하늘에, 다른 한 발은 땅 위에, 그러니까 양다리를 걸치고 있소.”

“오지랖이 꽤 넓으시군요(인사부장은 웃으면서 말했다). 가족 상황은?”

“성년이 된 아들이 하나 있소.”

“당신이 부양 하나요?”

“음… 아주 무거운 짐이오.” 하느님은 슬픈 표정으로 말했다.

“학력은?”

“학력은 따로 없소. 난 그저 실전을 통해서 배웠소.”

“실전이라뇨?”

“내가 창조해낸 실전이오. 내가 세상에 처음 도착했을 때는 아무것도 없었소.

나는 완전히 무(無)에서 시작했소. 모든 걸 내가 다 만들어야 했단 말이오.”

“그렇다면 직업은?”

“하늘과 땅의 창조자.”

- 본문 19p

이 책을 읽는 가장 큰 즐거움은, 이러한 발칙한 상상력이 넘치는 하느님의 대답들이다. 가자미에게 보호대를 만들어주기 위해 생선뼈를 만들었고, 술이 몹시 취한 어느 날 열쇠구멍에 열쇠를 맞추지 못해 달을 만들었고, 부채가 필요해서 바람을 만들었고, 태양에 대한 창작 저작권료를 일식 때는 감해주었고, 사람도 교대가 필요해서 죽음을 만들었다는 등, 인사부장으로서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기상천외한 답변들을 늘어놓는다. 그렇다고 하느님의 대답들이 그저 엉뚱한 것만은 아니다. 이 중에는 우리는 미처 깨닫지 못한, 인간사회의 부끄러운 모습을 우회적으로 비판하는 독설도 상당하다.

밤하늘도 보지 않는 우리들에게 보내는 유쾌한 독설들

“바보 같은 인간들이 바퀴를 달지 않았겠소? 나는 인간들을 위해 걸어 다닐 때 좋으라고 개암냄새 피어나는 오솔길과 드문드문 들꽃도 마련해두었건만, 인간들은 시속 100킬로미터로 달려가느라 들꽃을 바라볼 시간도, 개암냄새를 맡은 시간도 없소. 그저 목적지에 조금이라도 빨리 도착하는 것만 생각할 뿐이오(하느님은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나는 가끔씩 괜한 고생을 한 건 아닌가 생각한다오. 만일 다시 시작한다면 지구 대신 내가 뭘 만들 건지 혹시 짐작할 수 있겠소?”

“아뇨, 전혀.”

“거대한 주차장.”

“당신은 정말 인정머리가 없군요. 좀 너무하시는 것 같지 않아요? 당신은 인간들을 제대로 알기나 하세요?”

“당신은 인간들을 내가 아닌 다른 자가 만들기라도 한 것처럼 말하는구려. 인간들은 나를 실망시켰소.”

- 본문 70p

이처럼 하느님은 자신이 애써 만든 창조물 중 인간이 가장 큰 실패작이라고 토로한다. 별이 빛나는 아름다운 밤하늘은 TV를 보느라 인간들에게 시청률이 늘 저조했고, 다른 좋은 말들은 안 들으면서도 유독 “사랑하고, 번식하라”는 말은 너무도 잘 들어서 급기야 지구를 ‘거대한 주차장’으로 만들었고, 자신이 숨겨둔 쓰레기를 파헤쳐서 지구를 오염시키는 등 온갖 나쁜 짓을 자행한 인간을 만든 것을 후회하며 한탄한다.

 

때로는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린다

 

인사부장은 그렇다면 스스로 세상에 나오겠다고 요구하지도 않은 인간을 왜 만들었냐며 따져 묻는다. 그러자 하느님은 “나는 사는 게 지루할까봐 겁이 났소. 집 안이 텅 비어 있으면 신이 나질 않았소.” 하며 지극히 인간적인 속내를 내비친다. 자신이 사는 하늘나라에 안부전화 한통 없는 인간들이 마냥 섭섭한 하느님. 저자는 이런 하느님의 외로운 모습을 통해 자신만을 챙기느라 타인과 세상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잃어버린 현대인들의 고독한 내면도 꼬집어내고 있다.

물론 이 책에서 ‘하느님’은 종교적인 존재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물질만능과 이기주의로 똘똘 뭉친 현대인의 모습을 여과 없이 비춰주는 자화상 같은 존재이다. 이것은 하느님의 유서를 통해 더욱 현실감 나게 드러난다.

나는 지구의 법정 용익권을 인간들에게 넘깁니다. 인간들은 자기들의 비용으로 지구를 관리하고 고장 난 곳은 고쳐야 합니다. 허유권은 내 아들에게로 갑니다(나는 내 아들로부터 상속권을 박탈하고 싶지만, 현행법으로는 나한테 그렇게 할 수 있는 권리가 없습니다). 인간들은 자기들로 인해 상아가 잘린 모든 코끼리들과 뿔이 잘린 모든 코뿔소들에게 손해배상금을 지급해야 합니다. 인간들은 또한 이 지구를 자기들이 처음 물려받았을 때처럼 늘 깨끗하고 청결하게 유지해야 함을 명심해야 합니다.

- 하느님의 유서 중, 164p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라 그저 준비하기에만 바빠서 자신을 냉철하게 돌아보는 시간을 잃어버린 우리들에게 이 책의 하느님은 딱딱한 훈계조가 아닌, 톡톡 쏘면서도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하느님

 

하늘도 만들고 땅도 만들고 짐승도 만들고 인간까지 완성한 하느님은 기쁨에 잠길 새도 없이 우울증에 빠져들었다. 이제 일을 다 끝마쳤으니, 그렇다면 남은 건? 그렇다. 하느님은 이제 실직할 위기에 처했다. 백수가 된 하느님. 아니, 백수가 되기 싫어서 일자리를 구하려는 하느님. 일자리를 구하려는 사람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이력서와 자기소개서 작성이다. 하느님은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이지만, 하느님이 사는 곳엔 더 이상 일거리가 없으므로, 영원히 사는(하느님은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사람과 달리 영원히 사는 존재이므로, 한번 백수의 길로 접어들면 영원히 백수로 지내야 하는 문제가 있다) 백수가 되지 않으려면 사람처럼 해야 한다. 부랴부랴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마련한 하느님이 새를 타고 지상으로 내려와, 대기업 인사부장과 면접시험을 치른다는 ‘발칙한’ 상상이 이 책의 출발점이다.

엄청난 양의 창작 포트폴리오와 끝없이 이어지는 전과기록을 동시에 지닌 하느님의 면접은 천지창조, 즉 창세기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한다. 신의 업적을 놓고 지극히 인간적인 질문을 던지는 인사부장에게 하느님은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답변을 늘어놓는다. 가령, 하느님은 술에 취해 집에 돌아온 어느 날 밤, 어두워서 열쇠구멍에 열쇠를 넣느라 애를 먹었기 때문에 달을 만들었으며, 밤하늘에 반짝거리는 별들을 힘들게 만들었건만, 인간들은 야속하게 TV만을 볼 뿐 자신이 만든 ‘별이 빛나는 밤’은 시청률이 지나치게 저조하다고 푸념을 늘어놓는다. 그런가 하면 하나 있는 성년 아들을 ‘무거운 짐’으로 여기며, 이렇다 할 학식도 기술도 갖추지 못한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아들로 인해 마음고생이 심하다고 고백하기도 한다.

인간을 만들었지만, 인간에 대해서 지독히 실망한 하느님. 인간을 신뢰하지 않고, 인간으로부터 신뢰도 받지 못하는 하느님. 최선과 최악이 가능한 하느님. 스스로에 대해서 상상력이 풍부하지만 조직적이지 못하고, 대머리라서 불만이며, 노년기의 외로움으로 울적할 때도 있다고 불평하는 하느님.

안타깝게도 하느님은 결국 ‘낙방’ 통보를 받는다. 허리케인이나 지진 등으로 너무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간 전과기록과 경제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는 태도가 결정적인 불합격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회사 측의 설명이다. 언젠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당신은 그곳에 계속 머물러 계십시요. 우리는 이곳에서 살 테니까요”라는 주기도문 패러디를 읽으며 웃었던 기억이 난다. 하느님과 인간은 각자의 영역을 지키면서 적당히 거리를 두고 지내는 편이 아무래도 좋다는 것일까?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 하느님은 누구인가? 이미 19세기에 니체 같은 철학자는 신은 죽었다고 외쳤지만, 오늘날 우리들의 삶에서 신은 사라지기는커녕 점점 더 다양한 형태로 (하다못해 ‘지름신’까지!) 모습을 드러내는 듯하다. 그런데 우리들 앞에 나타나는 신은 더 이상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근엄한 자태를 지녔다거나 인간에게 어려운 과제만을 내리는 무서운 신이 아니다. 어쩌면 그 무서운 신은 19세기에 죽었으며, 인간과 비슷한 고민을 하고 비슷한 놀이를 즐기는 친근한 신, 다시 말해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신이 그 자리를 대신하는지도 모른다. 아니 그러한 모습을 <하느님의 이력서>에서 우리는 이미 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 옮긴이의 말, 양영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