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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 고독한 예술혼 /엄광용

혜공 2015. 11. 11. 13:25

 

 

책소개

이중섭의 삶 자체가 시대이자 역사이며 예술이었음을 증명해내는 책!

 

이중섭 50주기를 맞아 출간한 평전. 1916년 평안남도 평원군에서 태어나 1956년 서울의 한 병원에서 사망한 이중섭의 40여 년의 삶을 새롭게 읽어내고 있다. 이중섭의 생애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등 우리 근대사의 고통의 시기와 맞물린다. 그러나 이중섭은 치열한 예술혼으로 시대의 고난과 개인의 상처를 극복하고 '한국 근대미술의 선구자'가 되었다.

 

이중섭의 작품에서는 대담하고 힘찬 터치, 역동적이고 단순한 형태, 선명하고 화려한 색이 두드러진다. 그리고 작품 속에 들어 있는 고향과 가족에 대한 애틋한 정감, 그리고 전통적인 감수성 등은 그것을 보는 사람들의 마음에 아로새겨져, 오랜 시간이 흘러도 내내 잊히지 않는 인상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 책은 평전의 틀을 유지하는 한편, 소설의 기법을 활용함으로써 우리에게 이중섭의 삶을 친숙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 작업을 위해 저자는 최근에 새롭게 이중섭에 대해 연구된 결과들을 검토하고 섭렵한 것은 물론, 관련 사진과 그림을 풍부하게 수록함으로써 그 바탕 위에서 우리가 이중섭의 삶에 친근하게 접근할 수 있는 상상력의 통로를 만들어냈다.

 

 

저자소개: 엄광용

1954년 경기도 여주에서 태어나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1990한국문학신인상, 1994년 삼성문예상을 수상하였다. 지은 책으로 암각화에서 이중섭까지》 《이중섭과 세발자전거 타는 아이》《꿈의 벽 저쪽》 《지금도 왕비는 죽어가고 있다등이 있다.

목차

 

프롤로그

 

소에 미친 소년

동방의 루오

부산 피난민 수용소와 서귀포

고독 속에서 불타오른 예술혼

마지막 날들

 

작가의 말

연보

 

출판사 서평

 

이중섭 50주기에 다시 이중섭을 읽는다

1916410일 평안남도 평원군에서 태어나, 195696일 서울 적십자병원에서 세상을 떠난 이중섭. 만으로 40세의 삶을 살았고, 올해 96일로서 50주기를 맞는다. 길지 않았던 그의 생애는 우리 근대사의 고통의 시기와 맞물린다. 그러나 그는 치열한 예술혼으로 시대의 고난과 개인의 상처를 극복하고, ‘한국 근대미술의 선구자로 우뚝 서게 된다. 그의 작품에는 힘차고 대담한 터치와 역동적이고 단순화된 형태, 선명한 원색이 두드러진다. 또한 그의 그림에 담긴 전통적인 감수성과 고향과 가족에 대한 애틋한 정감은 그것을 보는 사람들의 가슴속에 아로새겨져, 시간이 흘러도 내내 잊혀지지 않는 깊은 인상을 만들어낸다. 이중섭 50주기에 때맞추어 펴내는 <이중섭, 고독한 예술혼>의 일부 내용은 제7차 교육과정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도 화가 이중섭이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다.

 

이중섭의 삶과 예술

<달과 까마귀>이중섭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화가로 손꼽는 화가이다. 하지만 예술가로서 그가 거둔 성과는 극한의 절망과 고독 속에서 이룩된 것이었다. 그의 삶의 출발점은 순탄했다. 다섯 살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지만, 부농 집안에서 태어났기에 그는 별다른 경제적 어려움을 모르고 학업을 마칠 수 있었다. 하지만 일제 식민지의 현실은 역으로 청년기의 이중섭에게 우리의 전통과 문화에 대한 뜨거운 자각과 애정을 일깨웠다. 특히 오산학교 시절에 받았던 민족주의 성향의 교육은 이후 그가 펼쳐나갈 예술세계의 확고한 의식적 기반이 되었다. 그 무렵에 벌써 이중섭은 한글의 자모를 가지고 구성한 그림을 그리기도 했으며, 평생 동안 자신의 작품에다 한글로만 서명했다.

1935년에 일본에 유학한 이중섭은 학풍이 자유로운 예술 전문과정 분카가쿠잉에 입학하여 본격적인 그림 공부를 했다. 이후 그는 여러 전시전에 작품들을 출품하여 입선하면서 평단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이 시기에 있었던 무엇보다도 중요한 사건은 야마모토 마사코라는 여인을 만난 일이다. 뒷날 이름을 이남덕으로 바꾼 이 여인은 태평양전쟁이 한창일 때 위험을 무릅쓰고 원산으로 건너와 이중섭의 부인이 되었다.

해방을 맞으면서 오히려 이중섭의 삶은 신산해진다. 이듬해에 첫아들을 얻었으나 곧 죽고, 이중섭은 아이의 관에 복숭아와 어린이를 그린 그림 몇 점을 넣어주었다. 한국전쟁 발발 직전에 형 이중석이 행방불명되고, 이중섭은 그해 126일 가족과 함께 월남하여 부산으로 내려왔다. 춥고 배고팠던 그의 피난지 생활에서 제주도 서귀포에서 보낸 반년 남짓한 생활은 잠시 끼어든 행복의 막간극 같은 것이었다. 이 시기에 그는 아이들과 바닷가에 나가서 게를 잡기도 하고, 아이들이 뛰노는 모습이나 서귀포의 풍경 등을 그림에 담아냈다. 그러나 아내와 두 아들은 일본으로 떠나게 되고, 이후 이중섭은 부산, 대구, 통영, 진주 등을 떠돌다가 서울로 올라오게 되었다.

삶의 마지막 불꽃을 태우듯, 그의 마지막 날들은 무서울 정도로 집요한 창작에 대한 열정과 처절한 고통 사이에서 빚어진 대결의 장 같은 것이었다. 헤어진 가족에 대한 견디기 힘든 그리움, 끝없는 절망과 체념, 병으로 무너져 내리는 육체, 하지만 이 모든 간난 속에서도 그의 예술은 마지막 정점을 향하여 가파르게 올라갔다. <달과 까마귀>, <흰 소>, <길 떠나는 가족> 등의 그림들은 이 시기에 생산된 걸작들이다. 이중섭은 극도의 영양실조와 급성간염으로 고통 받다가 쓸쓸히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