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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학년도 서울대학교 입학식 축사 /김난도

혜공 2015. 3. 31. 09:02

축    사

 

 

안녕하십니까?

 

생활과학대학 소비자아동학부에서 교수로 일하고 있는 김난도입니다. 평교수인 제가 이렇게 귀한 자리에서 축사를 할 수 있게 되어 매우 커다란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이 기회를 주신 총장님과 선배 교수님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저는 1963년도 32일에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그렇습니다. 32, 오늘이 바로 제 생일입니다. 어릴 때는 제 생일이 매우 싫었습니다. 학년이 새롭게 시작이 되는 날이라 제대로 생일잔치를 해본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오늘이 제일 좋습니다. 1365일 중에 아무 날이나 생일로 고를 수 있다고 하면 이제는 주저하지 않고 오늘 32일을 고를 것입니다. 왜냐하면 전 지금 선생이기 때문입니다. 자기 생일 아침에 전국에서 학생들이 모여 일제히 새로 학년을 시작하는데, 선생에게 그보다 더 어울리는 생일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저는 사주팔자 같은 것은 믿지를 않지만, 그래도 생일만큼은 선생이 될 운명을 타고났다 생각합니다.

자기의 직업이 천직이라고 여길 수 있으니 저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을 가르칠 선생으로서 축하와 당부의 말씀을 함께 드릴까 합니다.

지난 53번의 제 생일 중에서 제가 제일 행복하였던 날은 1982년의 오늘이었습니다. 서울대학교에 합격을 하여 입학식을 치르는 날이었지요. 그때 저 아래 대운동장에서 입학식을 하였는데 날씨가 아주 추웠습니다. 바람은 눈물이 나도록 차가웠지만, 가슴은 터질듯이 무척이나 뜨거웠습니다. 그때 나보다도 더 흥분하신 어머니의 표정을 보며 평생 처음 효도를 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것만으로도 너무 기뻤습니다. 여러분도 지금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잠시 후 입학식이 끝나거든 저기 뒤에 앉아 계신 어머니, 아버지에게 꼭 진심을 담아 감사하다고 말씀드리십시오. 앞으로 기회가 그렇게 많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오늘 꼭 하십시오.

 

사실 제 동기들의 대학생활은 녹록지 않았습니다. 나라는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계속 벗어나지 못했고, 잠시동안 희망을 가졌던 민주주의에 대한 기대 마저도 군홧발로 처참하게 짓밟혔습니다. 참담한 조국의 현실에 눈을 뜬 대학생에게 자기 자신의 미래를 꿈꾼다는 것은 사치 정도가 아니라 한나 아렌트 표현을 빌리자면, 순전한 무사유의 범죄였습니다.

 

여러분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엄혹하고도 처절했던 시기를 저희는 보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 세대가 오히려 지금보다 더 행복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기회는 많았기 때문입니다.

졸업을 하면 어디든 일자리를 골라서 갈 수가 있었습니다. 어떠한 영역이든 조금만 더 진지하게 계속하면 나름대로 전문가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그때 우리 세대가 더 총명커나 열심히 해서 그런 건 아니었습니다. 시대의 행운이었습니다. 1960년대 1인당 국민소득이 100달러가 채 되지 않았던 대한민국이 지금 3만 달러에 육박하기까지, 단군 이래로 가장 높은 성장을 누리면서 30년 동안 우리들의 청춘을 보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 대한민국 젊은 세대가 힘들다고 합니다.

 

좋은 데 취직하는 것이 정말 어렵고, 제때 결혼하는 것이 어렵고, 제대로 된 방 한 칸 마련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유사 이래 최고의 스펙을 가졌다고 하는 이 세대가 말이지요. 물론 이것은 시대적인 변화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이 더 이상 과거 같은 고도성장을 누릴 수 없게 됐습니다. 고성장의 시대에서 침체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경제와 인구의 구조가 크게 변화를 하면서 그 많았던 기회들이 점차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를 좌절하게 하는 것은 단지 경제성장이 떨어지고 실업률이 올라가는 점 때문만은 아닙니다. 경기는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습니다. 지금보다도 훨씬 더 힘들었지만 전 국민이 금반지를 꺼내모으며 재기를 꿈꿨던 때도 있었습니다. 현재 우리를 정말로 힘들게 하는 것은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경기침체가 영구히 지속될지도 모른다는 우려 속에서, 이 나라가 난국을 타개할 변화의 역량을 점점 상실해가고 있다는 절망이 정녕 우리를 힘들게 합니다.

 

얼마 전 매우 인기가 있었던 웹툰 드라마였던 <미생>에서 사업놀이라는 말이 있었죠? 진짜로 문제를 해결하지는 않고 열심히 하는 흉내만을 내고 있다는 뜻일 겁니다. 하지만 놀이를 하고 있는 것은 드라마에서 뿐만이 아닌 것 같습니다.

 

정치인들은 나라의 분열을 걱정한다면서 자기의 재선을 위해 국민을 이념으로 지역으로 갈라놓고 갈등을 이용하는 정파놀이, 관료들은 공익을 도모한다며 실은 자기 예산과 영향력을 확대시키기 위해 이 나라의 시스템을 비효율로 몰아넣는 규제놀이, 또 대기업들은 국가경제에 이바지한다면서 단가 후려치기, 사람·기술 빼앗기 등 각종의 불공정한 관행으로 시장을 황폐시키는 갑질놀이를 일부 고용주는 취업난을 악용해 열정페이다 뭐다 해서 청년 구직자의 노동을 약탈하는 착취놀이, 저를 비롯한 교수들은 이런 현실적 문제를 수수방관하며 자기 연구 실적만을 채우는 논문놀이를 하고 있습니다.

옴짝달싹을 하지 못하는 이 교착상태를 풀어낼 리더십은 나라 어디에서도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신입생 여러분,

 

좋은 날에 답답한 얘기들만 꺼내 미안합니다. 저는 오늘의 축사를 준비하면서 새로 대학생활을 시작하는 여러분에게 어떤 아름다운 축원을 해줘야 할까 많이 고민했습니다. 긴 고민 끝에 저는 듣기 좋은 덕담보다는 여러분이 앞으로 맞닥뜨려야 할 엄혹한 도전을 솔직하게 얘기하고 여러분께 분발을 당부해야겠다 생각했습니다. 제 평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이 소중한 기회를 막연한 인사말로 채우기에는 너무나 아쉬웠습니다. 그래서 전 여러분께 따끔한 각성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것이 선생이 할 일이기도 하니까요.

 

지금 여러분이 헤쳐나가야 할 두 가지의 큰 도전과제가 있습니다. 나라 안의 도전과 나라 밖의 도전입니다.

 

먼저 나라 안의 사정을 살펴보면, 가장 걱정이 되는 것은 세대 이기주의입니다.

영화 <국제시장>에 이러한 대사가 있었습니다.

이 힘든 세상 풍파를 우리 자식이 아니라 우리가 겪은 게 참 다행이라고.

하지만 지금의 기성세대가 나중에 오늘을 되돌아봤을 때도 이렇게 말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지금 현재의 경제·고용·복지 등 담론의 줄기를 자세히 보면 나중에

이 힘든 세상 풍파를 우리가 아니라 우리 자식이 겪게 해서 참 다행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noblesse oblige’라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다들 알고 계시겠지만, 높은 자의 책무라는 뜻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더 필요한 말은 어느 언론인의 표현을 빌리면 세니오르 오블리주 (senior oblige)’, 즉 나이 든 자의 책무가 아닐까 싶어요. 젊은 자들은 나이든 자들과 경쟁 상대가 되지 못합니다. 기성세대들이 가지고있는 정치.경제.사회적인 자원과 정보와 인맥의 차원이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성세대는 젊은 세대에게 어느 정도 양보해야 합니다. 젊은이들은 단순한 경쟁의 상대가 아니라, 나라의 큰 미래를 짊어지고 나갈 희망의 불씨이기 때문입니다. 젊은 세대에 투자하고, 양보하고, 그들의 미숙함을 배려하지 않는 사회에게 결코 내일은 없습니다.

 

청년은 우리의 미래입니다.

 

또한 나라 밖의 도전은 더욱 심상치 않습니다. 작년 여름 저는 연구를 위해 일본을 자주 방문했습니다. 도쿄에 들를 때마다 혐한 시위대를 만났습니다. 지하철에 붙어 있는 잡지광고며 기사들의 상당 부분이 한국을 폄훼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일본은 다시 유치에 성공한 올림픽 준비에 들떠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지난 겨울에는 중국에 다녀왔습니다.

갈 때마다 놀랍도록 변하는 곳이지만, 어느새 우리보다 훌쩍 앞선 것도 많은 나라가 돼 있었습니다. 흔히 중국을 짝퉁의 나라 정도로만 낮춰 보는 경향이 있는데, 대단히 잘못된 생각입니다. 중국은 압도적 1위 외환보유국이고, 이미 우주정거장, 항공모함, 비행기, 고속철도를 자체의 기술로 만들어내는 나라가 됐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런 중국이 앞으로도 상당 기간 고도성장을 계속해나갈 것이라는 점입니다.

제가 중국에서 가장 놀랍게 생각하는 것은 바로 여러분 또래 젊은 세대의 열정입니다. 흔히 쥬링허우라고 부르는 중국의 90년대생들은 제2의 마윈, 2의 레이쥔을 꿈꾸며 밤을 새워가며 도전 열기를 불태우고 있습니다.

중국의 대학생들은 정말로 열심히 공부합니다. ‘개미굴이라는 10평 남짓한 아파트에 십여 명의 학생이 함께 기거하면서 해만 뜨면 도서관으로 뛰어나가 종일 공부하다가 돌아옵니다.

우리는 중국 인구의 약 1/27 정도 됩니다. 그러니 우리가 중국에 뒤지지를 않으려면 27배 정도 열심히 노력해야 할 텐데, 지금은 중국이 27배 더 노력하는 형국입니다.

우리를 침략해서 식민지로 삼았던 나라에서는 증오의 감정이 커지고 있고, 우리와 바다를 맞대고 있는 나라는 한순간에 세계 최강국으로 자라났습니다.

 

"어리석은 자는 경험에서 배우고, 현명한 자는 역사에서 배운다" 했습니다. 우리는 다시 역사적 전환점을 맞고 있습니다.

결국에 저는 여러분들에게 희망을 겁니다.

단군 이래 최고의 역량을 갖췄다고 평가받는 우리의 젊은 세대가 교착상태에 빠진 나라에 새로운 모멘텀을 부여할 세계적인 인재로 성장해주기를 간곡히 바라는 것입니다.

열심히 공부해주십시오. 제가 대학시절을 돌이켜 생각할 때 후회되는 일이 참 많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아쉬웠던 건 역시 치열하게 공부하지 못한 것입니다.

스펙이 아닌 지성의 성장을 위해, 좋은 직업이 아니라 조국의 미래를 위해, 혼신을 다해 공부하십시요.

 

그러기 위해 다시 공동체를 이야기할 때입니다.

나 자신만의 이익이 아니라 여러분이 함께 성장해 나갈 우리 공동체에 대한 책임과 이타정신을, 이 교정에서 배워나가기 바랍니다.

공동체를 먼저 생각하는 선함을 가슴에 품고 개인의 열정을 불태울 수가 있을 때, 인류와 나라와 학교, 그리고 여러분 자신의 성장이 서로 접점을 찾아 잘 만개할 수가 있습니다.

 

신입생 여러분,

 

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은 무려 8,848 미터를 자랑하는 에베레스트 산입니다. 여기서 질문을 하나 드리겠습니다. 에베레스트 산이 세계에서 가장높은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왜 제일 높겠습니까?

답은, 히말라야 산맥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에베레스트 산이 세계에서 제일 높은 이유는 세계에서 제일 높은 히말라야 산맥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에베레스트 산이 만약 바다 한가운데 혼자서 있었다면 높아봐야 한라산이나 후지산 정도밖에는 되지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에베레스트 산은 세계의 지붕이라는 티베트 고원의 거봉들과 어깨를 맞대고 있습니다. 그 준령에 한 뼘만 더 높으면 바로 세계 최고로 높은 산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먼저 우리나라를, 또 우리의 학교를 히말라야 산맥으로 함께 키워나갑시다.

바다 위에서 혼자 높으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자기 자신만이 아니라, 나와 함께 가야 할 사회 약자들과 우리 공동체를 함께 생각하는, 선하고 책임 있는 인재로 성장해야 합니다. 당신이 여기 앉아 있기 위해 당신이 탈락시킨 누군가를 생각하십시오. 당신은 승리자가 아닙니다. 당신은 채무자입니다.

선함과 책임감을 바탕으로 우리의 공동체를 히말라야 산맥처럼 만들고 나서, 내가 한 뼘만 더 성장할 수 있다면, 그때 당신은 바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학생들이여,

선해지십시오, 성장하십시오.

당신이 희망입니다.

감사합니다.

 

201532일 김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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